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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Voice] 소중한 일상을 되찾는 노력 DUGOUTV

dugout*** (dugout***)
2020.09.08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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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2020년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와 닿는 말이 있다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이 문구가 아닐까. 즉흥적으로 야구장을 찾아서 외야석을 끊고, 무릎 위 치킨과 함께 시원한 생맥주를 들이키고,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구장이 울리도록 응원가를 부르는 모습. 이 장면들은, 볼 수 없을 거라고는 상상치도 못했던 ‘익숙함’이었다. 코로나19로 늦춰진 정규 리그 개막과 개막 이후 83일간 진행된 무관중 경기를 지켜보면서 이제 그 광경들은 익숙한 것이 아니게 되었고, 도리어 ‘소중함’이었음을 이제야 실감하고 있다. TV 혹은 스마트폰 너머로만 선수들을 응원하던 팬들에게 정부의 프로스포츠 관중 입장 허용과 함께 일상을 되찾을 기회가 조금씩 주어지고 있다. 우리는 또다시 익숙함에 속지 않고 소중함을 지켜낼 수 있을까.


 

에디터 황유빈 사진 롯데 자이언츠

 

 

#관중 입장, 괜찮을까


 

지난 7월 26일부터 KBO리그 경기에서 야구팬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5월 5일 2020 정규 리그가 시작된 이후로 약 3개월 만에 허용된 관중 입장이다. 전례 없는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계속해서 치러진 무관중 경기에 갈증을 느꼈던 팬들에게는 가장 듣고 싶었던 소식이었을 것이다. KBO는 안전한 경기 관람을 위해 각 경기장의 수용 가능 인원의 10% 이내에서 관중 입장을 허용하였으며, 철저한 방역지침 준수와 거리 두기 수칙의 유지를 전제로 점차 허용 인원을 늘려갈 방침이라고 이야기했다.

 

 

어렵게 시작된 관중 입장인 만큼 감염 예방을 위해 티켓 판매는 인터넷 예매 방식으로만 진행되고 있으며, 관중들은 입장을 위해 마스크 착용은 물론이고 체온 측정과 QR코드 인증을 반드시 해야 한다. 경기장에 들어선 뒤에도 제한은 곳곳에 있다. 일행이더라도 나란히 앉는 것은 불가능하며, 최소 한 칸 이상 띄어 앉아야만 한다. 야구장 문화 중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인 ‘치맥’을 비롯한 식음료도 통제의 대상이다. 물과 음료를 제외한 음식물은 야구장 외부에서 가져왔을 경우 반입 및 취식이 금지되며, 구장 내에서 구매했더라도 관람석이 아닌 지정 구역에서 섭취해야 하는 것이 수칙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만 해도 충분히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비일상(非日常)적인 야구장의 풍경이다.


 

하지만 가장 논란의 중심에 있는 대목은 ‘응원 금지’ 수칙이다. 비말 분출의 가능성이 있는 구호나 응원가는 부를 수 없으며, 환호성조차 자제해야 한다. 신체 접촉이 동반되는 응원인 하이파이브나 어깨동무 또한 당분간 삼가야 하는 행동이다. 야구장의 필수 불가결한 묘미였던 응원의 대부분이 금기 항목이 되어버린 셈이다. KBO는 코로나 19 대응 통합 매뉴얼을 발표하면서 이 같은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을 시에는 경고 혹은 퇴장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관중 입장이 현실이 된 지금, 위의 안전 수칙은 실현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을까? 사실상 KBO 매뉴얼에서 응원과 관련해 지시하고 있는 내용은 KBO리그의 전통화된 관람 문화에 비추어 보았을 때, 적용과 실천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팬들은 KBO리그의 오랜 응원 문화를 잠시 뒤로 하고 뉴노멀(New Normal) 시대의 스포츠 관람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했을지, 구단은 안전수칙 미준수 시에 약속했던 강경한 대처를 하고 있는지 등 관중 입장 허용의 현주소를 짚어볼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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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 입장의 실제

 

 

약 석 달간 팬들의 발길이 닿지 못했던 야구장이 다시금 익숙했던 소리로 메워지기 시작했다. 관중 입장 첫날, 서울 잠실야구장에는 전체 관람석의 10%인 2,424명의 인원이 경기 관람을 위해 모였다. 앞서 언급했던 지침의 내용과 같이 관중들은 입장하기 전 발열 검사와 사전에 발급받은 QR코드 인증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안전이 걱정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전보다 절차가 더 늘어난 탓에 입장 시간이 다소 지체되었고, 그 가운데 입장객이 몰리면서 대기 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길어진 줄이 여러 개로 늘어나면서 1m 이상 거리 두기가 불가능해졌고, 이를 제지하기도 쉽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여러 언론사에서 보도한 바에 따르면, 우려했던 대로 응원 금지 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으며 이를 어긴 관람객에 대한 제재 또한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 언론사와 인터뷰한 야구 관계자 A씨는 “사람이 흥이 나고 경기장에 음악도 나오는데 어떻게 응원을 안 할 수 있나. 팬들의 응원보다 응원단의 응원 방식이 예전 그대로라는 게 오히려 더 문제”라 말하며, “응원단상 앞 좌석을 아예 판매하지 않거나 응원단이 관중을 향해 응원을 유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과열될 수 있는 응원을 절제시키는 방법으로 응원석 판매 금지를 이야기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마당에, 구단의 안이한 판단으로 인해 불미스러운 사례도 발생했다. 롯데 자이언츠가 지난 7월 28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홈경기 당시 거리 두기 수칙을 어긴 것으로 정부 방역 당국으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은 것이다. 롯데는 사직구장 전체 수용 인원의 10%인 2,450석을 개방하였는데, 그중 1,000여 석이 관중들로 채워졌다. 그러나 문제는 발매된 2천여 석이 1루 응원석과 중앙석에 한정된 것으로, 익사이팅존을 제외한 3루석과 외야석은 애초에 예매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대부분 관중이 1루 내야석에 집중되는 상황이 벌어졌고, 1m 이상 거리 두기는 물론 다른 팀들처럼 두 칸 이상 떨어져 앉는 것 또한 제대로 지킬 수 없게 되어버렸다. 구단으로서는 이윤을 고려한 결정이었을 테지만, 접촉과 밀집을 최우선으로 주의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처사는 말 그대로 한 치 앞만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로 인해 문제가 생긴다면, 비단 KBO리그뿐만 아니라 타 프로스포츠의 관중 허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국내 프로스포츠의 관중 입장 선발주자로서 좀 더 신중한 선택이 요구되는 때라고 본다.


 

#관중은 어떻게 볼까


 

관중 입장 허용 이후 직관을 경험했던 실제 관중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7월 26일 서울 잠실구장을 찾았던 최모(25·서울 종로구) 씨를 만났다. 최 씨는 KBO리그 관중 입장에 대해 “무관중 기간이 길어지면서 휑한 관중석을 보니 아쉬웠는데, 입장이 된다는 사실에 기뻤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한편으로는 아직 이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며 걱정을 표하기도 했다.


 

실제 구장 내에서는 KBO 매뉴얼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를 묻자 최 씨는 “매뉴얼이 있는 건 알고 있는데 통제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며, 몇몇 사람은 연달아 앉기도 하고, 일어나서 환호성을 지르거나 응원가를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이를 저지하는 사람은 없었다는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또한, 관중석에서는 음식 섭취에 대한 제한이 있지만, 취식 지정 구역인 경기장 내부의 매점 근처에 사람들이 몰리는 모습이 불안해 보였다고 말했다.


 

영화관이나 해수욕장과 같은 다른 여가 활동과 비교했을 때, 야구장 입장과 관련한 안전수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말에는 “야구는 선수 혹은 야구 관계자가 한 명이라도 감염되면 전체 시즌을 멈춰야 할 수도 있을 만큼 여파가 크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장소보다 철저한 안전 수칙이 적용되는 것이 맞다”고 답했다. 덧붙여 “현재 주점이나 노래방 등에 비해 야구장에만 엄격하다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야구장 안전수칙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장소가 감염 확산 예방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며 소신을 밝혔다.


 

끝으로 그는 “앞서 말했듯이 한 명의 감염자라도 나오는 순간 시즌이 기약 없이 중단될 수 있는 만큼 구단 측에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또, 더 많은 관중이 관람할 수 있으려면 불편하더라도 최대한 조심하는 시민의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현시점에서 구단과 관중이 가져야 할 책임을 강조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야구장 관중 입장에서 인지해야 하는 핵심은 ‘야구장의 특수성’이다. 야구장에는 영화관이나 미술관 등 여타 시설과는 다르게 관람객뿐만 아니라 ‘선수들’이 존재한다. 야구 경기에 관중이 없으면 완성이 안 되지만, 선수가 없으면 시작할 수 없다. 그러므로 여느 장소보다 철저한 관리 체계가 갖춰져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야구장의 특수성으로 오랫동안 자리 잡아 온 야구 관람 문화 또한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KBO와 구단 측은 모두의 안전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관중들이 직관만의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절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또, 국내 프로스포츠 중에서 관중 입장을 허용한 것은 KBO리그가 첫 번째인 만큼 순간의 방심이 불명예로 이어지지 않도록 보여주기식 제재가 아닌 각별한 대처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중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일상으로의 복귀가 간절하겠지만 예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비일상의 일상’을 인식해야 한다. 어렵게 얻은 소중한 기회라는 것을 가슴에 새기며, 그리웠던 야구와 선수들을 오래 볼 수 있도록 소중함에 익숙해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

코로나19,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은 다름 아닌 ‘재난’으로 일컫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그런데 하루에 수십 개씩 쏟아지는 긴급재난 문자에 무뎌지는 순간이라든지,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는 데에서 불편함보다는 당연함이 먼저인 순간들을 겪고 있노라면 우리의 일상이 재난이라는 특수상황으로 인식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특히 예전과 다름없이 SNS 맛집 앞에 줄을 서 있거나, 카페에서 마스크를 벗고 삼삼오오 앉아있는 모습들을 보면 더욱더 그렇다. 그런 와중에도 확진자는 연일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으며, 그게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진짜’ 현실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국민과 의료진이 경계를 늦추지 않은 덕에 전 세계 프로야구에서 두 번째로 KBO리그 개막을 이뤘고, 관중 입장이라는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이제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시대에 발맞춰 존속될 수 있는 관람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 대신에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준다면 국내 프로스포츠뿐만 아니라 MLB(미국 메이저리그), NPB(일본프로야구) 등 해외 프로야구에도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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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그아웃 매거진 113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0년 113호(9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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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1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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