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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직 신입
지난 9월 15일 열린 2023 KBO 신인 드래프트. 전체 5라운드 두산 베어스의 순서에서 익숙한 이름이 호명됐다. 바로 ‘최강야구’의 막내이자 동의대학교의 포수 윤준호였다. 수개월 간 ‘최강’라는 이름을 가슴에 달고 뛰던 그가 이제는 두산의 안방마님이라는 새로운 명찰을 달고 팬들을 찾아올 예정이다. 정든 대학 시절을 뒤로하고 이제는 프로 선수로의 탈바꿈을 준비하는 윤준호. 2번의 청소년 국가대표팀 발탁과 ‘최강야구’ 출연 등 숱한 경험으로 무장한 경력직 신입인 그는 과연 어떤 야구를 보여줄까?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Mingyu Kim Location Dugout Magazine Studio
출생 2000년 11월 14일 신체조건 180cm 89kg 출신학교 센텀중-경남고-동의대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2022시즌 성적 23경기 타율 0.240 18안타 2홈런 17타점 2도루 OPS 0.716
#국가대표 포수
드래프트 이후 한 달 정도 지났는데, 근황이 어떤가요? (10월 5일 인터뷰)
하도 바쁘게 지내서 시간이 어떻게 간지도 모르겠어요. 이런저런 일로 정말 바빴습니다.
드래프트 화제의 주인공 중 한 명이었어요. 달라진 인기를 체감하는 순간이 있나요?
대학리그 경기를 치르는데 관중분들이 찾아오셨던 게 기억에 남아요. 팬분들이 경기장에 찾아와 응원해 주시고, 경기 끝나면 선물을 주시거나 사진 찍어달라고 하시기도 했고요. 그럴 때 팬분들이 좋아해 주신다는 게 실감이 났어요.
WBSC U-23 야구 월드컵을 앞두고 있죠. 컨디션은 좀 어때요?
운동도 계속하고, 경기도 소화했기 때문에 컨디션 관리는 잘 되고 있어요. 지금도 대표팀에 합류해서 운동하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습니다.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출전이에요. 지난해와 비교해서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작년에 제가 대표팀에서 나이가 두 번째로 많았는데, 올해도 똑같이 두 번째로 많아요. 그러다 보니 개인적으로 크게 다르다는 느낌은 없어요. 대신 작년에 비해서 대표팀 내에 아마추어 선수 비율이 낮아졌어요. 작년에는 대학 선수가 꽤 있었는데, 이번에는 5명밖에 없고 나머지는 다 프로 선수들이거든요. 그래서 전반적으로 좀 더 강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작년과 비교해서 다르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 대표팀 소집이 있던 거로 알고 있어요. 본인에게 작년에 출전했던 경험에 관해서 물어보는 선수가 있었나요?
그런 부분을 특별하게 물어보는 선수는 없었던 것 같아요. 대신 대회 일정에 관한 거라든가, 작년과 비교해서 어떤 점이 다른지 물어보는 경우는 좀 있었어요.
이번 대회가 본인의 존재감을 증명할 수 있는 무대잖아요. 두산에 합류하기 직전에 치르는 대회인 만큼 각오가 남다를 것 같아요.
사실 작년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3학년 말이고, 내년이면 4학년이니까 저를 증명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대회에 임했어요. 그리고 이번 대회도 마음이 비슷해요. 지명을 받았다고 해서 마음이 놓인다기보다는 오히려 더 부담이 있어요. 제 기량을 증명해야 하고, 많은 걸 보여줘야 하니까요.
#꿈을 이룬 순간
이번이 두 번째 드래프트였는데, 당일 아침에 어떤 기분이었는지 궁금해요.
아무래도 두 번째다 보니까 드래프트가 어떤 시스템으로 진행되는지 잘 알잖아요. 그리고 작년보다는 조금 안정권이라고 생각도 해서 그런지 전날만 해도 긴장되는 건 딱히 없었어요. 그런데 당일 아침이 되니까, 와… 미치겠더라고요. 부산에서 부모님이랑 같이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서울 도착해서 밥을 먹는데 진짜 반도 못 먹었던 거 같아요. 밥이 넘어가지를 않더라고요. 그래서 부모님께 “못 먹겠다, 밥이 안 넘어간다”라고 했던 기억이 나요. (같이 식사하던 부모님도 긴장했을 거 같아요.) 부모님도 되게 긴장 많이 하셨죠. 그런데 부모님은 밥은 잘 드셨어요. (웃음)
방송으로 인지도를 쌓은 후라, 내심 지명될 확률이 높을 거라고 보지는 않았나요?
저도 고등학교 때보다는 확률이 훨씬 높다고 생각했어요. 우선 대학에 다니는 4년 동안 열심히 했고, 노력한 저 자신을 믿었어요. 그리고 청소년 대표팀도 두 번이나 했고 ‘최강야구’로 이름을 알렸기 때문에 약간의 기대는 하고 있었죠. 그래도 한 번 실패한 경험이 있어서 절대 안도하지는 못했어요. 끝까지 긴장의 끈은 놓지 못했던 것 같아요.
5라운드에서 두산의 지명을 받았어요. 그 순간에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 누구였나요?
이건 무조건 부모님이지 않을까요? 고마운 분이 많았지만, 그래도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제일 먼저 떠올랐어요. (혹시 지명 순간에 부모님은 어떤 반응이셨는지 기억나요?) 사실 제가 5라운드에 지명받고, 11라운드까지 선수대기석에 계속 앉아 있어서 그 순간에 부모님이 어땠는지는 못 봤어요. 그래도 아마 우시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최강야구’ 동료인 류현인도 KT 위즈에 지명됐어요. 이제는 동료에서 상대로 만날 텐데, 본인이 포수를 보고 있을 때 류현인이 타석에 들어서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요?
진짜 재밌는 상황일 것 같아요. ‘최강야구’랑 대학 리그에서도 상대해본 적이 있긴 했지만, 그때는 그다지 친할 때가 아니었거든요. 지금은 현인이랑 워낙 친하니까 걔가 타석에 들어오면 아마 장난을 많이 치지 않을까 싶어요. 못 치게 방해하고, ‘뭐 치고 싶냐?’ 이런 식으로 말도 걸기도 하면서요.
‘최강야구’를 정보명 감독의 권유로 나갔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어떤 프로그램인지 정확히 몰랐다면서요.
네. 그래서 처음에 프로그램 설명을 듣고 나서 되게 당황했어요. 1루수에 이승엽 선배님이, 2루수에 정근우 선배님이 계신다고 하니까, 듣자마자 “예? 뭐라고요?” 이랬던 기억이 나요. 이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도 들고, 사실 말도 안 되잖아요. TV에서만 보던 대선배님들이니까, 그분들이랑 야구를 한다고 하는데 아예 감이 안 오더라고요. 제가 생각하던 수준을 한참 뛰어넘은 거라 ‘내가 이걸 하는 게 맞나’하는 생각도 했어요.
최종적으로 출연을 결심했을 때는 어떤 마음가짐이었나요?
사실 이미 나가겠다고 했으니까 무를 수도 없었지만, 설령 무를 수 있다고 했어도 무를 생각은 없었어요. 이런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좋은 기회가 왔는데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제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잖아요. 어차피 하기로 한 거, 진짜 마음 한번 강하게 먹고 해보자고 다짐했어요.
팀에 합류한 직후 활약이 대단했어요. 7할에 육박하는 타율로 주전 포수 자리를 꿰찼어요.
새로운 환경에 놓이니까 긴장도 되고, 잘하는 모습도 보이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가 팀에서 압도적인 막내였잖아요. 그러니까 오히려 마음 편하고, 대차게 할 수 있었어요. 또 선배님들이 되게 예뻐해 주셨거든요. 조금만 잘해도 칭찬을 엄청나게 해주시니까 신이 났어요. 그렇게 신난 마음으로 야구를 하다 보니까 성적도 좋게 나왔다고 생각해요.
동의대와의 경기에서는 잠시 본래 소속팀으로 돌아갔는데, 이때 동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우선 몬스터즈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물어봤어요. 선배님들은 어느 정도로 잘하는지, 평소에 어떠신지 물어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것보다도 다들 ‘그냥 몬스터즈에서 뛰지 왜 동의대로 돌아오냐’라고 그러더라고요. 또 이런 말도 했어요. 저 상대로 도루하고 싶다고. (웃음)
모교로 돌아와서 몬스터즈를 상대했는데, 꽤 약한 모습을 보였어요. 그동안 몬스터즈 투수들의 공을 받아와서 익숙하게 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였어요.
멘탈적인 문제가 컸다고 생각해요. 제가 몬스터즈와 동의대 가운데에 있는 포지션이었는데, 양쪽에서 시달렸거든요. 선배님들은 저한테 ‘몬스터즈 다시 안 올 거야?’라고 하시고. 이게 멘탈적으로 조금 신경 쓰였는데, 또 그만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심리적으로 부담도 있었어요.
몬스터즈 투수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투수는 누구였나요?
일단 (송)승준 선배님이랑, (유)희관 선배님이요. 두 분 다 어려웠는데, 그래도 희관 선배님을 상대로는 정타를 날리긴 했어요. 그런데 승준 선배님 공은 못 치겠더라고요. 아예 손을 못 대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구위도 좋고 변화구 각도 좋아서 굉장히 까다로웠어요.
천안북일고와의 경기에서는 4번 타자로 출전했어요. 굉장히 파격적인 타순이었는데, 그날 맹타를 휘두르며 MVP로 선정됐어요.
사전에 4번 타자로 나갈 거라는 말을 전혀 못 들었어요. 방송에 나간 그대로 앉아 있다가 이승엽 감독님이 “4번 준호”라고 하시는데, 그때는 그냥 저한테 뭐 시키려고 부르시는 줄로 알았어요. 그런데 정신 차리고 보니까 속에서 무언가가 확 올라왔어요. 뭐랄까, ‘내게도 기회가 왔다, 오늘 잘하면 진짜 난리 나겠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흥분감이 올라오더라고요. 오히려 긴장감은 딱히 없었어요.
야구를 하면서 4번 타자 경험이 많은 편이었나요?
마지막으로 4번을 쳐본 게 중학교 때인 것 같아요. (웃음) (되게 오래전이네요. 살짝 반가운 느낌도 들지 않았나요?) 반가웠다기보다는 자주 오기 힘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계속 4번 타자로 나갈 것 같지는 않고 많아야 한두 번 정도일 텐데, ‘즐겨야겠다, 이 얼마 되지 않는 기회를 잡아야겠다’하는 느낌이었어요.
최근 방송된 U-18 국가대표팀과의 경기가 화제였어요. 그 경기에서도 주전 포수로 나왔죠.
제가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관중 앞에서 야구를 할 기회가 없었어요. 그런데 그날 1만 6천 명 정도 왔던 거로 기억하는데, 정말 흥분됐어요. 고척돔에 관중이 가득 차 있는데, 뭔가 긴장이 되고 부담감이 느껴진다기보다는 설레고 흥분되는 감정이 앞섰어요.
프로 무대에서는 많은 관중 앞에서 경기하는 게 일상이 될 텐데요. 특히 두산의 잠실야구장엔 정말 많은 사람이 들어올 텐데, 그 순간을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상상해 봤죠. 너무 설렐 것 같아요. 떨린다기보다 설레고 약간 흥분될 것 같아요. 피가 끓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팬들의 응원 소리랑 함성이 들리면 아드레날린도 막 나올 거고요. (본인의 응원가를 육성 응원으로 들으면 어떨 것 같아요?) 응원가라는 게 오직 그 선수만을 위한 거잖아요. 만약에 제 응원가를 타석에서 처음으로 딱 듣게 된다면, 그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류현인과 팬레터를 읽는 영상을 찍은 적이 있어요. 기억에 남는 편지가 있었나요?
정말 어린 팬도 있다는 게 기억에 남았어요. 저희한테 삼촌이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또 어떤 분은 시험을 앞두고 있는데 저랑 현인이가 신인 드래프트를 준비하는 걸 보면서 응원도 하고, 저희 덕분에 힘을 얻으셨다는 내용의 편지가 있었어요. 제게 드래프트가 중요했던 것처럼, 그분에게는 시험이 중요한 거였을 거잖아요. 그때 ‘누군가가 나를 보고 힘을 낼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되게 묘한 기분이었어요.
가장 어린 팬이 몇 살이었어요?
10살이었나? 그 정도였던 거로 기억해요. (그중에서 윤준호 선수를 보고 야구를 시작하는 팬도 있지 않을까요?) 사실 저도 야구를 빨리 시작한 편은 아니었어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야구를 좋아하게 됐고, 초등학교 5학년이 끝날 때쯤 친구들이랑 동네 야구를 하면서 시작했거든요. 마침 몬스터즈에 베이징 올림픽 때 뛰셨던 선배님이 많은데, 제가 그분들을 보고 야구를 시작했듯이 만약 누군가가 ‘최강야구’를 보고 야구를 시작한다면 그 기억 속에 저도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니 소름이 돋아요. 마냥 가볍게 야구를 해서는 안 될 것 같고, 누군가의 정말 자랑스럽고 떳떳한 선배이자 본보기가 돼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부담감도 좀 느껴지네요.
프로행을 앞두고 선배들의 조언이 많았을 것 같은데, 제일 가슴에 와닿았던 말이 뭐였나요?
(박)용택 선배님께서 소심하게 플레이하지 말고 무조건 대차게, 당돌하고 에너지 있게 하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나요. 이미 대선배들과도 야구를 해봤는데, 어디 가서 꿀릴 게 뭐가 있겠냐고 하셨거든요. 그 말이 가장 크게 와닿은 말이었어요. 진짜 틀린 말이 아니잖아요. 프로에 가서도 절대 위축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큰 힘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용택 선배님께 정말 감사했어요.
#4년의 기억
대학 시절에 성적이 좋았어요. 첫 3년 동안 3할도 쳤는데,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어떤 걸 중점적으로 준비했나요?
무엇보다 기본적인 부분에 신경을 썼어요.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야구를 해왔지만 보완해야 할 점들이 너무 많았거든요. 또 제가 체격이 왜소한 편이라 웨이트 트레이닝에 시간을 투자했어요. 먹는 것도 잘 챙겨 먹으면서 힘을 기르는 데에 집중했어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정보명 감독이 스스로 제자들에게는 무서운 이미지가 있을 것 같다고 했어요. 제자로서 느끼기엔 어때요?
무서울 때는 되게 무서운 분이세요. 아닐 때는 안 그러시기는 한데, 평소에 말씀하시는 걸 좋아하셔서 같이 얘기하면 재밌을 때도 많아요. 그런데 무섭게 변하시면 진짜 무서운 것 같아요. (웃음)
본인이 생각하는 정 감독은 어떤 지도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동의대가 운동량이 좀 많아요. 또 학교 스타일과는 별개로 감독님도 굉장히 빡센 느낌이고요. 항상 열정 있는 스타일이시거든요. 평소에 ‘이기는 야구’를 추구하시는데, 사실 이긴다는 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가르침을 받을 때는 다소 어려운 분이라고 느낄 수도 있어요. 운동도 많이 시키시고, 훈련 중에는 세밀한 부분을 요구하시곤 하는데 그게 약간 어렵게 다가올 때가 있어요. 그 당시에는 힘들기도 했지만 지나고 나니 그 모든 것들이 감사하게 느껴져요.
얼마 전 성균관대와의 U-리그 왕중왕전 준결승에서 아쉽게 1점 차로 패배했어요. 대학생으로서 치른 마지막 대회라 아쉬움이 컸을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도 아쉽죠. 저희 4학년들도 그랬지만, 팀원 전부가 진심으로 이기고 싶어 했던 기억이 나요. ‘지면 큰일 난다,’ ‘지면 학교 가서 운동 많이 해야 한다.’ 이런 느낌이 아니라, 단순히 순수한 마음으로 이기고 싶었어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한 경기라도 더 하고 싶고, 절대 지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4강까지 갔고, 준결승도 9회 말 2아웃까지 이기고 있어서 사실상 결승에 간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마지막에 역전 홈런을 맞았을 때는 정말 거짓말인 줄 알았어요. 꿈꾸는 것 같고. 선수들 다 경기장에서 주저앉았거든요.
팀원들끼리는 끝나고 어떤 얘기를 나눴나요.
진짜 미련은 없지만… 미련도 없고 후련한데, 마지막이 너무 아쉬워서. 그냥 계속 아쉽다는 얘기만 했어요. 그래도 ‘이것 또한 나중 가면 술안주다’ 이런 얘기도 했죠. (웃음)
캠퍼스 생활도 얼마 안 남았잖아요. 곧 졸업인데 마지막 대학 생활은 잘 즐기고 있나요?
그럴 시간이 잘 없어요. 드래프트 지명받기 전에는 방학이었거든요. 그래서 학교에 안 다니고 있었는데, 지명을 받고 난 후에는 학교에 거의 가지도 못하고 바로 대표팀에 합류했어요. 그래서 한 달을 또 빠지게 됐고, 대회가 끝나고 나서는 학교 며칠 다니다가 또 두산에 합류해야 하고요. 사실상 이제 거의 못 즐긴다고 봐야죠.
4년 동안의 대학 생활을 어떻게 기억하고 싶어요?
많은 것을 얻은 시간이었어요. 사실 시작할 때는 약간 좋지 않은 마음이었어요. 한 번 큰 실패를 경험한 후였으니까요. 정말 긴 시간이 될 것 같고, 힘든 시간이 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지나고 나니 정말 많은 것을 얻었고, 제 인생에 있어서 진짜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스스로 많이 성장했던 시기였다고 기억하고 싶어요.
#새로운 무대를 향해
두산 선수로 뛸 날이 머지않았네요. 프로가 됐다는 게 언제 실감이 나나요?
지명받고 나서 ‘이제 두산 베어스 선수다’라고 생각했고, 유니폼도 입어보고 하니까 조금 실감은 났어도 사실 그렇게까지 몸으로 와닿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잠실에 가서 메디컬 테스트를 받고 사무실에 앉아 있으니까 조금씩 프로 선수가 됐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어제 계약을 했는데, 계약서에 직접 사인을 하니까 느낌이 완전 다르더라고요. 정말 이제는 두산 소속이라는 게 실감이 돼요.
프로에서의 첫 시즌,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사실 ‘신인왕이 목표다’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현실적인 목표로 보진 않아요. 솔직하게 2군에서 시작할 가능성이 크니까요. 그래서 내년 시즌 동안 잠실야구장에서 한 번이라도 제 모습을 비추고,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팬들로부터 ‘저런 선수가 있구나’, ‘저 선수 괜찮네’라는 말을 듣고, 앞으로 좋은 선수가 되겠다는 인상을 심어드리는 게 목표입니다.
포수로서 본인의 최고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해요?
확실히 수비가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전반적으로 크게 떨어지는 것 없이 수비에서 안정감이 있는 것 같고, 또래 선수보다 여러 경험이 많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과 류현인의 뒤를 이어 ‘최강야구’에 합류할 선수들이 생길 텐데, 선배로서 어떤 말을 남기고 싶나요?
제가 빠진 후에 합류하는 선수는 정말 천운을 타는 거로 생각하고, 그 기회를 꼭 잡았으면 좋겠어요. 저랑 현인이도 ‘최강야구’를 통해 잘 풀린 만큼, 그 선수들도 모든 게 잘 풀리기를 바라요. 또 ‘최강야구’가 절대 그냥 단순한 예능이 아니에요. 가보면 직접 느낄 테지만, 피 튀기는 승부의 세계거든요. 긴장도 되겠지만 지금까지 해오던 것과 똑같은 야구를 하는 거일 걸고, 또 거기서 뛰다 보면 재밌을 거예요. 그러니까 ‘기대해도 좋다!’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요.
윤준호에게 ‘최강야구’란?
제 인생에 정말로 굵직한 한 줄을 쓰게 해줬죠. ‘최강야구’에 나가서 TV로만 보던 선배님들과 인연을 맺었고, 많은 걸 배웠어요. 또 이걸 통해서 많은 사람에게 제 이름을 알릴 수 있었고요. 진짜 큰 선물을 안겨준, 고마운 존재라고 말하고 싶어요.
훗날 다시 <더그아웃 매거진>에 출연했을 때를 상상해 볼게요. 미래에 본인이 어떤 선수로 성장해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시 나왔다는 건 제가 잘하고 있다는 뜻이겠죠? 무엇보다 한 팀에서 ‘그 자리는 윤준호의 것이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선수가 돼 있으면 좋겠어요.
그때의 윤준호에게 메시지를 남겨본다면요?
방금 말한 것처럼 다시 인터뷰하게 됐다는 건 잘하고 있다는 의미일 텐데,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게 절대 한순간에 이뤄진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옛날부터 그 미래까지 정말 큰 노력과 고생을 했을 테니까요. 또 그 과정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도 계실 테고요. 초심을 잃지 말고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는 선수가 되라는 말을 남기고 싶어요.
이 자리를 빌려 부모님께도 한마디 남겨볼까요?
제가 10년 넘게 야구를 하는 동안 부모님께서 정말 많은 뒷바라지를 하면서 고생하셨어요. 아직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건 아니지만, 프로에 가게 되면서 다행히 그 부담이 조금은 덜어진 것 같아요. 이제부터 제가 앞으로 나아가고 성장하면서 그동안 받았던 도움과 사랑을 조금씩 갚아나갈 거예요.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더그아웃 매거진> 독자분들과 팬들에게도 한마디 부탁해요.
<더그아웃 매거진> 독자분들, 그리고 절 응원해 주시는 팬분 모두에게 감사함을 정말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마추어 신분이었다가 이제 막 신인이 됐음에도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큰 응원 보내주신 만큼 실망하게 하지 않고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또 항상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 더그아웃 매거진 139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2년 139호 (11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www.dugoutm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