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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022시즌 개막을 앞두고 SSG 랜더스는 메이저리그에서 돌아온 김광현과 4년 총액 151억 원(연봉 131억 원, 옵션 20억 원)의 대형 계약을 발표했다.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대우였다. 김광현의 국내 복귀 이슈만큼이나 주목받은 건 계약 세부 사항이었는데, 계약 첫해인 2022년에 131억 원의 연봉 중 81억 원을 몰아서 지급한다는 내용에 이목이 쏠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SSG는 지난 스토브리그에서 김광현 외에도 예비 FA(자유계약선수) 신분이던 문승원, 박종훈, 한유섬과 차례로 다년 계약을 진행했다. 2023년부터 KBO에 시행될 샐러리캡 제도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에디터 김진석 사진 SSG 랜더스
#샐러리캡의 기원
샐러리캡(Salary Cap)은 임금을 뜻하는 ‘Salary’와 한도를 의미하는 ‘Cap’이 합쳐진 단어로, 선수들의 연봉 총액이 일정액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제도를 뜻한다. 기원은 미국 프로스포츠다. 1970년대 중후반 미국 대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다수의 프로스포츠 구단이 창단했고, 이와 함께 스포츠 시장도 엄청난 성장세를 보였다. 자연스럽게 선수들의 몸값도 가파른 상승곡선을 탔으며, 각 구단의 재정에 큰 부담과 고민거리가 안겨지게 됐다. 이미 이전에 유사한 문제로 여러 구단과 리그의 파산을 경험했던 미국 시장은 안전장치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빠른 상황 판단은 행동으로 옮겨졌고, 결국 1980년대 스포츠 마켓의 과열에 따른 파산을 막기 위한 제도를 신설했다.
샐러리캡에는 절대로 상한액을 넘겨선 안 되는 하드 샐러리캡, 상한액을 넘길 수 있으나 그 경우 불이익이 가해지는 소프트 샐러리캡 등 여러 방식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MLB는 소프트 샐러리캡의 일종으로 ‘사치세’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팀 연봉 총액이 제한 금액(2022년 기준 2억 3천만 달러)을 넘은 팀에겐 그 액수에 상응하는 벌금과 드래프트 지명 순위 하락 등의 불이익이 가해진다. MLB 사무국은 이렇게 거둬들인 사치세를 유소년 육성 지원 자금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KBO에 씌워질 캡
곧 시행될 KBO의 샐러리캡은 앞서 언급한 MLB의 사치세와 유사하다. 상한액을 초과한 팀은 횟수별로 제재금 및 신인 지명권 단계 하락의 페널티를 받는다. 1회 위반 시 초과분의 50%에 해당하는 제재금, 2회 연속 위반 시 초과분의 100%에 해당하는 제재금과 신인 지명 1라운드 9단계 하락, 3회 이상 연속 위반 시 초과분의 150%에 해당하는 제재금과 신인 지명 1라운드 9단계 하락이라는 처벌이 가해진다.
다만 노조 협상을 통해 고정 상한액이 정해지는 MLB와 달리 KBO는 우선 독자적인 방식으로 초기 상한액을 설정했다. 2023시즌 각 팀의 국내 선수 샐러리캡 상한선은 2021~2022시즌 각 구단 연봉 상위 40인의 총액을 합친 후, 10으로 나눈 평균의 120%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책정됐다. 또 주목할 점은 외국인 선수 샐러리캡이 따로 있다는 점이다. 외국인 선수 3명의 연봉 총액은 옵션과 계약금 등을 모두 포함해 400만 달러를 넘을 수 없으며, 이를 어기면 선수 등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최초 규정이었다. 하지만 너무 적은 금액이라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이사회를 통해 기존 외국인 선수와 재계약할 경우, 해당 선수의 재계약 연차에 따라 한도를 10만 달러씩 증액할 수 있는 규약이 신설됐다. 그동안 구단의 의지에 따라 특별한 제한 없이 투자가 이뤄졌다면, 내년부터는 KBO의 이와 같은 주재하에 제재가 발생하게 됐다.
#선수 보호도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제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또한 끊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구단과 선수 사이의 연봉협상 시 협상의 주도권이 구단 쪽으로 완전히 넘어갈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최소한의 선수 이권 보장도 어려워질 거라는 의미다. 샐러리캡을 준수하기 위해 구단은 고연봉자 및 FA 자격자의 연봉을 낮게 측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전력에 비중이 낮은 저연봉자를 무더기로 방출시킬 수 있는 공식적인 명분 또한 확보하게 된다. 개인의 실력에 따라 연봉으로 인정받는 곳이 프로지만, 새로운 제도는 사실상 선수의 능력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상한선을 지켜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구단은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할 당위성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외국인 선수 샐러리캡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번 시즌 외국인 선수 3인 모두가 맹활약한 삼성 라이온즈의 예를 들면, 투수 데이비드 뷰캐넌과 알버트 수아레즈, 타자 호세 피렐라의 몸값 총액이 이미 390만 달러에 달한다. 성적만 보면 세 명 모두 재계약 대상자이고 연봉 상승이 확정적이나, 내년부터 적용되는 제도를 고려하면 재계약을 낙관할 수만은 없다. 그마저도 이사회를 통해 재계약 외인에 관한 규약이 신설됐기에 기대를 걸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분명 3명 중 한둘은 떠나보내야만 했을 것이다. 샐러리캡으로 인해 뛰어난 외국인 선수 유출이 지속한다면, KBO리그의 전체적 수준 및 경쟁력 하락까지 걱정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선수로서는 긍정적인 성적에도 불구하고 연봉이 삭감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는 샐러리캡 제도. 그렇기에 샐러리캡을 시행하는 리그에서는 약 5년 단위로 노사 협상을 거쳐 연봉 상한액 등 규정을 수정한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선수와 협회 간 치열한 눈치싸움으로 파업과 직장 폐쇄와 같은 사고가 발생할 위험성 또한 내포하고 있다. MLB 직장 폐쇄 사태가 길어지며 리그 개막이 지연되는 사태까지 겪은 게 당장 올해 초다.
#MLB의 사례
일찍이 유사한 제도를 시행 중인 MLB는 어떤 선례를 남겼을까. 제도 시행 초기에는 사치세를 무시하는 팀이 존재했다. 대표 사례인 뉴욕 양키스의 경우 시범 운용 기간부터 매해 막대한 금액의 사치세를 감수하며 팀 연봉 총액을 초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양키스는 제도 시행 이후로 2019년까지 약 3억 4,100만 달러의 사치세를 지불하며 샐러리캡 도입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와 같은 구단들의 이와 같은 행보로 더 강한 제재의 필요성이 커졌고, 결국 누진세를 도입해 사치세가 누적될 때마다 추가 페널티를 부과했다.
누진세 도입 이후 제재금 부담이 급증함에 따라, 구단들이 과거와 같이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돈을 쓰는 모습은 보기 힘들어졌다. 우승을 위한 과감한 시도가 아니라면 정해진 선에서 라인업을 꾸리려 노력하게 됐다. 이뿐만 아니라 자금을 투입해 즉시 전력감의 선수를 데려오기보단, 리툴링 혹은 육성 시스템 관리에 주력하는 방향으로 추세가 바뀌어 가고 있다. 단기적 목적을 위한 투기가 아닌 장기적으로 팀을 운용할 수 있는 투자로 긍정적인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진짜 이유는
여러 가지 리스크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KBO에 샐러리캡이 존재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존재한다. 바로 각 구단의 재정 건전화다. 프로 리그와 구단이 지속성과 영속성을 갖기 위해선 하나의 기업으로서 자생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KBO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KBO리그 구단들은 모기업에 의존하는 형태로 끝없이 제자리걸음 중이다. 한 해 야구단을 운영하는 데 있어 적자를 피하기란 쉽지 않은 현실이다.
2021년 기준 10개 팀 중 매출액이 가장 높았던 LG 트윈스의 재정을 살펴보자. 당해 광고 수익, 입장 수익 등을 포함해 총 588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러나 선수단 운영비만 무려 408억 원에 달했고, 구장 운영비 71억 원 등을 포함한 총 지출액은 667억 원이었다. 약 79억 원의 적자를 본 셈이다. 다른 구단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마찬가지로 2021년 기준 NC 다이노스의 –38억 원, 두산 베어스의 –34억 원 등 다수의 구단이 마이너스 당기순이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나마 SSG 랜더스가 17억 원, 롯데 자이언츠가 22억 원의 순이익을 내는 등 적자를 면했는데, 이 숫자에는 함정이 숨겨져 있다. 바로 특수관계인 매출로, 흔히 기업 지원금으로 알고 있는 모기업과 연관된 액수가 포함된 점이다. 앞서 언급한 롯데와 SSG의 특수관계인 매출은 각각 241억과 223억에 달해 이들 역시 모기업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이 모든 금액이 지원금이라 가정할 순 없으나 특수관계인 매출, 즉 모기업 지원금이 없으면 흑자를 기록한 두 구단 역시 막대한 적자를 피할 수 없었을 거라고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사업구조가 독특한 키움 히어로즈 외에는 당장 모기업이 구단 운영에서 손을 떼면 1년이라도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구단을 찾기 힘들다. 자금 지원이 끊겨 내부 FA 자원을 타 팀에 뺏기거나 전력 보강에 차질을 빚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모기업 또한 부담이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돈 먹는 하마’라는 말이 붙을 만큼 해마다 적자를 기록하는 야구단의 운영을 포기할지 고민하는 곳도 없지 않다. 올해 여름 떠오른 모 구단의 매각설은 이 고민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음을 경고하는 이슈였다. 재정 위기는 팬들에게 쉽게 와닿는 문제는 아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하루빨리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다. 한 번에 바뀔 수는 없더라도 구단의 재정 자립도 향상을 도모하는 제도 시행은 필수에 가깝다.
#지출 억제가 다가 아님을
샐러리캡 도입이 곧바로 구단 자생력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아닌, 향후 10년 혹은 그 이상을 바라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여러 잡음과 마찰이 발생하더라도, 섣불리 시행을 철회하는 등 조급하게 반응하지 않고 꾸준히 제도를 보완해가야 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 선수가 응당 누려야 할 권리와 직결된 문제기에 더욱 그렇다. NBA(미국프로농구)나 우리나라의 V리그(프로배구) 등이 시행하는 샐러리캡 플로어, 즉 연봉 총액 하한선을 설정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선수들에게 최소한의 안전 보장이 가능하며, 구단들의 극단적인 투자 둔화를 막아 장기적으로 리그 전체적인 파이 확대를 기대할 방안이다. 샐러리캡의 목적은 각 팀이 돈을 안 쓰게 하는 게 아니다. 목적이 불분명한 과도한 소비를 줄여 건전한 시장을 조성하는 데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 더그아웃 매거진 140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2년 140호 (12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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