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DUGOUT Dream] KIA 타이거즈 이준영 MEMORIES

dugout*** (dugout***)
2019.12.02 11:32
  • 조회 2111
  • 하이파이브 0

 

미완의 투수, 가능성을 던지다

 

2019시즌 KIA 타이거즈가 받아든 최종 성적표는 7위. 팬들마저 외면한 초라한 성적이지만 젊은 불펜진의 쏠쏠한 활약만큼은 내년을 기대케 하기 충분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박준표-전상현-문경찬으로 이어지는 필승조의 뒤에서 조용히 제 역할을 다한 이준영의 헌신이 숨어있었다. 흔히 추격조라 하면 잘해도 본전, 못하면 독박을 뒤집어쓰기에 십상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승패가 기운 경기라 할지라도 롱릴리프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강렬하진 않지만 차분한 무채색으로 마운드를 물들이는 투수, 그가 던진 것은 공이 아닌 ‘가능성’이다.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소경화 Location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


 이준영_(1).jpg

 

<더그아웃 매거진>과는 첫 만남이다.

이렇게 영상까지 찍는 인터뷰는 처음이라 긴장된다.

 

한창 마무리 훈련 중인데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나. (11월 5일 인터뷰)

올 시즌은 힘들만 하면 2군에 잠깐씩 내려갔다 오곤 해서 부담이 덜했지만, 내년에는 풀타임 소화를 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 훈련에 초점을 맞춰 운동하고 있다.

 

2019시즌 출발이 좋았다. 상무 야구단 제대 후 바로 1군 스프링 캠프 명단에 들고 개막전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렸다.

입대하기 전까지는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게 많았다. 그런데 군대에서 많은 것이 변화했고, 전역하면 무조건 야구만 해야겠다는 다짐으로 준비를 철저히 한 게 도움이 됐다.

 

#51이닝의 가치

 

커리어 하이를 찍은 박준표, 신인왕 후보에 오른 전상현, 국가대표 문경찬. 이들에 비해 이준영의 호투는 상대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쉽게 말해 티가 덜 났다. 물론 37경기 51이닝 1승 1홀드 평균자책점 6.35라는 개인 기록만 놓고 보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야구가 기록의 스포츠라 한들, 승패가 기운 경기의 추격조로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은 그의 몫은 인정받아 마땅하다.

 

긍정적인 출발과 달리 등판하는 상황들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그동안 보여준 게 없으니 당연히 내가 나가는 게 맞다. 추격조로서 최대한 긴 이닝을 던져 다음 투수에게 무리가 가지 않게 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믿었다.

 

지는 경기의 추격조, 그런 상황에 나가야 하는 투수의 마음이 궁금하다.

상황은 중요하지 않다. 이기는 경기에 나가면 더 좋겠지만, 지는 경기에 나간다고 해서 안 좋은 마음은 절대 없었다. 다만 내가 나간다는 건 대부분 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팀의 승리를 위해서는 못 나가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역할인데 그걸 혼자 감당했다.

올해는 이 자리에서 시작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최선을 다해 공을 던졌을 뿐이다. 다만 받은 기회를 제대로 못 살린 것 같아 후회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후회인가.) 중요한 상황에 내도 막아줄 거라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감독님과 팬들에게 그런 믿음을 주지 못했다. 실점도 많았다.


이준영_(6).jpg

 

기억한다. 평균자책점이 19.64까지 오른 적이 있다.

당시에는 일부러 기록을 안 봤다. 보기도 싫고 주변에서 말하는 것도 싫었다. ‘천천히 내려야지’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는데 내려갈 만하면 또 올라가더라.

 

온전히 혼자 만든 자책점은 아니었다.

전부 내 자책점이 맞다. 내가 줬든 다음 투수가 줬든 모두 내가 준 점수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결국 6점대까지 낮췄고 최고 구속도 145km/h까지 올랐다.

사실 스피드가 그렇게 올라올 줄은 몰랐다. 아무리 해도 143km/h까지 나오던 게 마지막 등판 경기에서 145km/h를 찍다니 상상도 못 한 일이다. (유독 KIA 투수 중에 구속이 증가하는 케이스가 많다.) 모두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한다.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빠져 산 게 도움이 됐다.

 

상무에서 선발 로테이션을 돌아서인지 긴 이닝이 부담돼 보이진 않는다.

확실히 부담은 없다. 대학 때도 투수가 한두 명밖에 없어 8이닝씩 던지곤 했다.

 

올 시즌 선발 마운드가 일찍 무너질 때마다 다음 투수로 나가서 좋은 피칭을 보여줬고, 그 덕분에 팬들이 이준영이라는 존재를 알게 됐다.

그런 것보다는… 스프링 캠프 때 찍은 클렌징 영상 때문에 알아보시는 것 같다. (분명 먼저 얘기 꺼냈다.) 아니 아니 아니! (웃음)


이준영_(2).jpg

 

#그를 완성하는 것들

 

인터뷰 전, 두려운 뭔가가 있는지 야구 얘기만 해달라며 신신당부하던 그는 결국 본인 입으로 ‘그 얘기’를 먼저 꺼냈다. 알 사람은 알고 모를 사람은 모를 이준영의 비밀이라 하면 구단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클렌징 루틴 콘텐츠일 터. 영상에서 그는 뷰티 유튜버로 분해 남다른 뷰티 지식을 뽐냈고, 이후 팬들 사이에서 크게 화제가 되며 ‘쭌튜버’라는 애칭을 얻었다.

 

쭌튜버의 솔직한 마음은 뭔가.

이걸 나만 보면 상관없는데 사람들이 다 보고 가족도 보고 하니까 얘기를 들을 때마다 부끄럽다. (가족들은 뭐라고 하던가.) 처음에는 “야구 영상을 찍어야지, 왜 이런 걸 찍냐?”라고 우스갯소리로 말씀하셨다.

 

당시 촬영할 때는 별생각 없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야구와 관련된 영상을 찍을 줄 알고 방에서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근데 알고 보니 뷰티 영상이라는 거다. 못하겠다고 빼다가 간단하다고 해서 못 이기는 척 수락했다. 할 땐 내가 또 열심히 한다. (웃음)

 

영상이 나가고 선수단 내에 큰 파장이 있었다.

당시에는 이렇게 파장이 클 줄 몰랐다. 영상이 나간 뒤 코치님부터 선수들까지 전부 와서 화장품 바르는 법을 물어보더라. 정말 창피하고 힘들었다. (본인은 계속 창피하다고 하는데 팬들이 “쭌튜버 파이팅”이라고 하니까 “감사합니다!” 하고 지나가는 영상을 종종 봤다.) 부끄럽지만 별명이 생긴 건 좋다. 가끔씩‘쭌튜버 한번 쳐볼까?’ 하면서 검색해보기도 한다.


이준영_(7).jpg

 

솔직히 그 영상 10번 이상 봤다, 안 봤다?

한두 번도 제대로 못 봤다. 오히려 친구들이 더 본다. 특히 (박)준표가 옆에서 맨날 보여주고, 피하면 귀에 소리를 들려준다. 준표도 피부 관리 잘하니까 한번 시켜줬으면 좋겠다.

 

투수조끼리 유독 사이가 좋아 보인다.

중간 나이인 92년생 동갑내기가 많다 보니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좋아졌다. 선배들한테 잘하고, 후배들도 잘 따르고 하니까 스스럼없이 어울리게 된다.

 

92라인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

나서는 타입이 아니라 딱 중간 역할이다. 보통 (홍)건희랑 (문)경찬이가 친구들을 이끄는데 특히 경찬이가 나랑 대비된 캐릭터다. 항상 업 돼 있다. 초등학생처럼 맨날 “짱짱!” 이러고 다녀서 내가 맨날 텐션 낮추라고 잔소리한다.

 

먼저 주목받는 친구들을 보며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도 있었을 법하다.

말도 못 한다. 특히 올해 준표와 경찬이가 엄청나게 잘하지 않았는가. (전)상현이도 후배지만 군대 동기로서 필승조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며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내년에는 나까지 다 같이 잘하는 게 목표다.

 

잊을 수 없는 날이 있다. 9월 24일 키움 히어로즈전에서의 선발 등판으로 야구팬들에게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선발 소식을 들었을 때는 상대가 키움이라는 말에 긴장했다. 1위 싸움을 하고 있던 팀이 아닌가. 근데 그때 준표가 5이닝 무실점을 하면 밥을 사준다고 해서 그 약속 꼭 지키라고, 내가 내려가면 바로 네가 던질 거니까 준비하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경기 당일이 됐는데 1회에 너무 긴장되더라. 첫 타자는 무조건 막아야 했는데 안타를 맞았다. 다행히 위기를 모면해 2회부터는 긴장이 풀렸고 그때부터 마운드 위에서 즐길 수 있었다. 야구를 하면서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팬들의 응원도 소름 돋았다. (결국 5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준표가 소고기도 사주고 커피도 사줬다.

 

그 경기 이후 이준영은 선발 체질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선발이든 중간이든 상관없다. 어디서든 나만 잘하면 된다는 마음뿐이다.

 

경기 후 단상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보는데 참 행복해 보이더라.

전날부터 일부러 긴장을 풀기 위해 인터뷰 좀 준비해달라고 얘기하고 다녔는데 말한 대로 돼 기분이 좋았다.

 

동료들이 물세례를 하며 축하해주는 것도 감동적이었다.

(양)현종이 형까지 그렇게 해주실 줄은 몰랐다. 사실 올 시즌 전까지는 그렇게 친하지 않았다. 어려워서 말을 잘 못 붙이겠더라. 근데 이것저것 알려주시고, 챙겨주시고, 밥 사주시고… 현종이 형한테는 항상 감사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걸 알려주던가.

공을 던질 때 머리를 숙인다거나 하는 투구폼의 자잘한 문제점을 짚어주셨다. 안 좋은 습관을 버리고 좋은 걸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양현종이라는 선배가 있는 팀은 클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내가 좀 못 큰 것 같다. (웃음) 내년에는 더 많이 물어봐서 높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이준영_(4).jpg

 

#내일을 준비하는 자세

 

마무리 훈련이 한창이던 지난 10월, KIA가 사상 첫 외국인 감독 선임이라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KBO의 성공적인 외인 감독 선례를 본 팬들은 열광했고, 선수들은 등번호가 없는 연습복 대신 유니폼을 착용하고 훈련에 나섰다. 감독의 눈에 들기 위함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호랑이군단은 이미 세대교체의 선봉에 섰다. 그리고 2020시즌에는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통한 상위권 도약을 꿈꾼다. 과연 그 청사진 속에 이준영의 이름 석 자가 중앙에 자리할 수 있을까?

 

외국인 감독이 선임되며 편견 없는 공정한 기용에 대한 선수단의 기대가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결국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오는 것이다. 내가 잘해야 기회도 있고, 내년도 있다.

 

맷 윌리엄스 감독에게 본인을 각인시켰나.

아직 내 이름을 각인시킬 만큼 충분히 보여주진 못 했다. 게다가 어제 홍백전에서는 볼넷도 내줬다. (그래도 무실점이었다.) 꾸역꾸역. (웃음)

 

얼마 전 열린 호랑이 가족 한마당에서 직구 스트라이크를 못 넣어 슬라이더를 던진다고 농담처럼 얘기한 바 있다.

원래는 직구 스트라이크를 잘 던졌다. 근데 군대에서부터 던지면 계속 볼이 되더라. 그때부터 가장 자신 있는 슬라이더로 스트라이크를 잡기 시작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지금 찾고 있다. 시즌이 끝난 후부터는 일부러 슬라이더를 안 던지고 직구, 투심, 커브로만 훈련하는 중이다. 미리 만들어놔야 내년에 쓸 수 있기 때문에 서재응 코치님과 열심히 연습해 직구를 많이 던지는 투수가 되고 싶다.

 

말하는 걸 보면 늘 조곤조곤 차분하다.

평소에도 조곤조곤… 감정 변화나 액션이 큰 사람은 아니다. 다만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면 마운드 위에서의 평정심이 무너져 고민이다. (안 좋을 때 제일 처음 보이는 증상은?) 식은땀을 흘리고 코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로진도 유난히 많이 발라 딱 보면 티가 난다.


이준영_(9).jpg

 

이제 코만 볼 것 같다. (웃음) 이준영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가족이다. 게임이 끝나면 군산에 있는 부모님이 항상 먼저 연락해주신다. 못 던져도 수고했다고 잘했다고 격려해주시는데 그럴 때면 무조건 잘해야겠다는 마음밖에 들지 않는다. (경기는 자주 못 보러 오시겠다.) 아버지는 TV로 보시고, 어머니는 내가 나오면 잘 못 보신다. 그래도 여동생이 종종 응원하러 와준다.

 

최종 꿈이 궁금하다. 앞으로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은가.

‘야구선수’ 하면 ‘양현종’ 아니겠는가. 힘들겠지만 현종이 형에 가까운 선수가 되는 게 큰 꿈이다.

 

***

투수가 투수판에 발을 올리는 순간, 관중은 온 시선을 마운드에 모은다.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온전한 투수의 시간이다. 프로 5년 차인 이준영은 아직 이 시간을 완벽히 즐기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준영의 내일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의 곁에는 함께 기뻐해 주는 친구들이 있고, 온 마음으로 응원해주는 가족이 있고, 뜨거운 환호로 보답하는 팬이 있다. 물론 본인 역시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입에서 친구들 얘기가 떠나지 않고, 가족 생각에 미소를 머금고, 팬들을 위해 기꺼이 유튜버가 되기도 한다.

 

그는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오고, 그 기회를 잡는 것이 준비된 자의 몫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나는 그를 주목한다. 다음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은 이준영임이 틀림없다.

하이파이브 0 공감하면 하이파이브 하세요!

댓글 0

KIA타이거즈,기아타이거즈,이준영,더그아웃매거진,KBO,KBO리그,프로야구,야구선수,야구,인터뷰

등급
답글입력
Top
등급
답글입력
  • 등급 닉네임 어쩌고
  • 2014.03.16 23:43
수정취소 답글입력
닫기
TOP